진리에의 초대
살을 제거하면 뼈가 남는다. 중복과 혼잡을 제거하면 구조가 남는다. 구조의 반대는 복잡이니 곧 중복과 혼잡이다. 세상은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이라는 집의 뼈대가 된다. 구조는 의사결정구조다. 의사결정은 사건 속에서 일어난다. 사물은 관찰하면 되는데 사건은 해석되어야 한다. 구조론은 사건을 해석하는 도구다.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일찍이 사물에 대한 관점은 있었어도 사건에 대한 관점은 없었다. 아무도 사건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필자가 말하는 것이다. 사건은 의사결정의 연결이며 의사결정은 닫힌계 내부에서 대칭을 이루고 축을 이동시켜 또다른 대칭을 만드는 방법으로 계 내부의 에너지적인 모순을 처리하는 형태로 일어난다. 하나의 밸런스에서 또다른 밸런스로 옮겨가는 것이 사건이다. 한 가지 모순의 해소가 또다른 모순을 일으키므로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마침내 천하에 망라되었다.
사건에는 밸런스를 조직하는 공간의 방향과 밸런스를 옮겨가는 시간의 순서가 있으니 질서가 된다. 사건에는 질서가 있으므로 우리는 추론하여 사건의 다음 단계를 내다볼 수 있다.
자연이 먼저 있었고 인간이 나중 왔으며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에서 변화가 일어났고 인간의 지식은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다. 변화를 어떻게 추적할 것인가? 변화는 움직이고 움직임을 따라잡는 것은 관점의 이동이다. 주체의 관점과 객체의 관점이 있다. 보통은 객체의 변화를 추적하지만 주체도 변한다는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불변의 잣대로 우리는 변화를 계측할 수 있다. 사물이 궁극적인 단계에서는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는 것이 원자론이고 알고보니 그것도 변한다는게 양자역학이다. 사물은 변하지만 그 사물을 태우고 가는 사건의 질서는 변하지 않는다. 사건의 질서야 말로 우리가 의지해야할 불변의 절대진리다.
영어 truth는 단순히 참인 진술을 뜻하지만 우리말 진리는 더 큰 의미가 있다. 절대적이고 유일하고 불변하며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진리다. 사물에는 그것이 없지만 사건에는 그것이 있다. 사건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우리는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사건의 연결고리를 장악하고 계를 통제할 수 있다. 하나의 스위치를 조작하여 일만 개의 가로등을 켜고 끌 수 있다. 산의 정상처럼 뾰족한 그것은 있다.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인간의 언어가 부족하다. 언어를 탓해야지 진리를 탓하면 안 된다. 구조론이 사건의 해석에 쓰이는 새로운 언어를 공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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