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론사전
게임에의 초대
세상에 개소리가 너무 많다. 말 되는 소리 좀 하자. 활은 하나인데 화살은 백방으로 날아간다. 원인은 하나인데 경과는 여럿이고 결과는 더 많다. 갈수록 태산이라 억장이 무너진다.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하나의 자궁이 있는 법이다. 백과사전식 열거주의라면 좋지 않다. 난삽함을 피해야 한다. 하나의 근본, 하나의 엔진, 하나의 핵심을 짚어야 한다. 사건 전체를 한 줄에 꿰어 하나의 통짜덩어리로 설명해야 한다. 실제로 의사결정이 일어나는 지점을 중심으로 사유해야 한다. 에너지의 작용측을 해명해야 한다. 계의 통제가능성 위주로 설명해야 한다. 여러 피해자를 탓하지 말고 한 명의 범인을 취조해야 한다.
본말전도라 했다. 뒤집어진 본을 놔두고 어질러진 말에 대응하니 피곤한 일이다. 자잘한 노가다에 앵벌이로 시간 때우지 말고 통 큰 뒤집기 한 판으로 해결봐야 한다. 인간들이 말을 개판으로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 전에 언어가 비뚤어져 있다. 언어도 개판이지만 그 전에 관점이 비뚤어져 있다. 관점도 개판이지만 그 전에 게임이 비뚤어져 있다. 의심해야 한다. 우리는 행선지도 모르면서 엉뚱한 차에 탑승하지 않았는가? 일이 이 지경이라면 사태는 꼬여도 단단히 꼬인 셈이다. 쾌도난마라 했다. 단 칼에 베어버리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거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전부 거짓말이다
언어는 연결이다. 맥락이 연결되지 않고 중간에 끊어지거나 얼버무리거나 갑툭튀 하면 그게 개소리다. 연결은 공유다. 사슬은 마디를 공유하다. 공유를 끝까지 추적하여 정상까지 연결해야 한다. 정상은 사건 전체를 공유한다. 다양한 헛소리를 주워섬기다 보면 그 중에 혹시 하나 쯤은 진실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전부 개소리다. 판을 완전히 갈아엎어야 한다. 다섯가지 유형의 개소리가 있다.
첫째는 괴력난신. 애초에 개소리 할 요량으로 지어낸 뻔뻔한 개소리다. 사차원, 초능력, UFO, 귀신, 무한동력, 각종 음모론 따위다. 소인배가 대중의 이목을 끌려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질러보는 것이다. 이들은 뭔가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암시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근거는 없고 그냥 먹히니까 하는 말이다.
둘째는 희망사항. 그런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그게 실제로 있다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원자론, 결정론, 이데아론, 해탈, 유토피아론, 혁명이론, 종교의 신 개념이다. 항해자에게는 길을 안내하는 등대가 필요하지만 그게 바로 이거다 하고 타겟을 찍으면 안 된다. 아닌 것을 배제하면 남는 것이 정답이다.
셋째는 관념타령. 듣기 좋은 말로 사람을 꼬시는 말이다. 자유, 평등, 정의, 평화, 사랑, 행복, 윤리, 도덕 따위다. 뭐든 좋은 말은 다 갖다 붙이면 된다. 이들은 결과를 소급하여 원인으로 바꿔치기 하는 본말전도 수법을 쓴다. 일이 잘 풀리면 그런 좋은 결과가 올 수도 있지만 그게 우리가 잡을 핸들은 아니다.
넷째는 낚시신공. 작은 것을 투자해서 큰 것을 먹는다는 궤변이다. 처세술, 노자사상, 정신력, 실용주의, 손자병법, 노력타령 따위다. 원칙보다 변칙, 정론보다 궤변, 큰길보다 뒷길, 실력보다 협잡으로 이긴다는데 다단계 상술과 같이 일시적으로 먹히지만 지속가능하지 않다. 떡밥만 열심히 던지다가 거덜난다.
다섯째는 선입견. 말하기 편한대로 말해버리는 것이다. 민족성, 동기, 야망, 목적, 의도, 욕망, 쾌락 따위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얕은 지식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네 생각이 맞다'고 긍정하며 살살 넘어오게 만든다. 사람을 어린애 취급하며 갖고 놀려는 수작이다. 편견과 혐오, 차별주의,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낚이는 사람이 있으니까 낚는 사람이 있다. 거짓말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구조론은 수학이다. 수학은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공식을 제공할 뿐 답을 찍어주지 않는다. 꾸준하게 개소리를 쳐내다보면 희미하게 방향이 보일 것이다. 중도에 포기하고 주저앉아 구석에서 작은 점방을 개설하여 본전을 회수하려는 소인배의 작은 욕심을 버려야 한다. 큰 뜻을 품고 큰 그림을 그리고 끝까지 가면 진실이 이긴다.
창조보다 구조
구조론은 커다란 그물이다. 고래를 잡든 물개를 잡든 상관없다. 한 번 던져진 그물은 당길 수만 있고 풀 수는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물을 던질 때는 넓게 벌려야 하고 벼릿줄을 당길 때는 깔대기를 좁혀야 한다. 여러분이 얻어야 하는 기세는 그 넓음과 좁음 사이에 비례로 있다. 일을 크게 벌이고 몫을 작게 챙기면 뒤에 부가가치로 많은 것이 따라온다. 사건은 다음 단계로 연결된다. 당장 성과를 내기보다 다음 게임에 초대되는 것이 중요하다. 공간의 그물은 구構, 시간의 벼리는 조造다. 구의 그물코를 넓게 벌리고 조의 벼릿줄을 한결같이 당겨서 커다란 깔대기를 만들어야 한다. 구조론은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는 도구다. 좋은 사람이 쓰면 좋아지고 나쁜 사람이 쓰면 나빠진다. 이왕이면 좋은 사람이 구조론을 써야 한다. 혼자 못 쓰고 함께 써야 하는 도구이므로 좋은 사람이 쓸 확률이 높다. 큰 그물은 혼자 던질 수 없고 함께 던져야 한다는게 의리다. 의리를 배웠다면 다 배운 것이다.
사람들은 서울로 간다느니 제주도로 간다느니 하며 다투고 있다. 어디로 가든 상관없다. 이념타령, 노선타령, 관념놀음 부질없다. 이왕 갈것이면 차를 타고 가야 한다. 맨땅에 헤딩하지 말고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이왕 차를 탔으면 운전석에 앉아야 한다. 남탓은 하지 말고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이왕 운전석에 앉았으면 핸들을 쥐어야 한다. 운전하는 재미를 안다면 멱살잡이 다툼 벌였던 행선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당신은 계속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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