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
차원
차원은 에너지가 한 지점에 동시에 맞물리는 정도다. 맞물린 상태에서 에너지 작용이 밸런스의 모순을 일으키면 맞물림을 해소하는 형태로 의사결정이 일어난다. 간단히 말하면 깨진다. 계는 체로 깨지고, 체는 각으로, 각은 선으로, 선은 점으로 깨진다. 궁수가 활에 활줄과 화살을 매기고 손으로 잡으면 네 방향의 힘이 하나의 꼭지점에 맞물린 4차원이다. 궁수가 손을 빼면 화살이 날아가고 맞물림이 풀리며 차원이 감소하여 최종적으로 0차원 점에 이른다. 궁수가 활과 활줄과 화살을 잡은 상태가 4차원 계, 궁수를 제외하고 활과 활줄과 화살이 3차원 체, 궁수와 활이 빠지고 활줄과 화살이 2차원 각, 활줄도 빠지고 화살이 1차원 선, 화살이 과녁에 박힌 지점이 0차원 점이다.
축구시합이라면 두 팀과 심판과 관객에 그라운드까지 다섯이 맞물려 사건을 이룬다. 선수가 관객과 심판 역할을 겸할 수 있으므로 최소 둘이 필요하다. 둘의 접점이 0차원 점이다. 두 사람이 일대일 축구를 해도 나머지 포지션들이 생략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실제로 자연에 존재하는 것은 4차원 계다. 0, 1, 2, 3차원은 말하기 좋도록 일부를 생략한 것이다. 관련자를 전부 끌어들이면 복잡하므로 일부를 생략하고 핵심 당사자인 선과 면만 건드리자고 약속하는 것이다.
원래 수학자가 좌표에 1차원 선과 2차원 면을 그렸는데 나중에 평면에 그릴 수 없는 3차원 입체를 억지로 그리고, 내친 김에 아인슈타인의 시간 4차원과 0차원 점까지 일을 크게 벌여놓은 것이다. 수습이 안 되고 있다. 그것은 사람 사이의 약속이고 자연에는 그런 것이 없다. 자연은 네 방향의 사면체에 이들이 맞물린 꼭지점을 포함하여 다섯 방향의 에너지가 4차원 계를 이루며 그 외에는 존재가 없다. 의사결정이 언제나 4차원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사건은 닫힌계 안에서 기승전결로 전개해 간다. 사건이 상당히 진행되었다면 계는 더 이상 의사결정에 관여하지 않으므로 뺀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의 순서에 따라 질이 결정되면 계를 빼고, 입자가 결정되면 체를 빼고, 힘이 결정되면 각을 빼고, 운동이 결정되면 선을 뺀다. 하나씩 빼서 최종적으로 량이 남으면 점이다. 점은 0차원이므로 맞물림이 없다. 점은 선이 끊어지는 지점이고 끊어졌으므로 사건은 끝이다. 에너지가 계를 빠져나가는 지점이 점이고 나머지는 그 점을 확정하는 절차다.
활은 활시위의 각에서 각에서 화살의 선을 거쳐서 과녁의 점으로 빠지고, 총알은 약실의 각에서 총신의 선을 거쳐서 총알의 점으로 빠진다. 천칭은 두 접시가 한 점에 맞물린 계에서, 한쪽 접시로 기울어진 체, 기울기를 결정하는 각, 기울어지는 동선의 선을 거쳐 눈금의 점으로 끝난다. 인체라 해도 체중의 계에서 근육의 체, 팔꿈치의 각, 손가락의 선을 거쳐 손톱의 점으로 에너지가 빠져나간다. 자연의 모든 존재의 모든 변화는 4, 3, 2, 1, 0차원으로 갈 뿐 그 외에는 없다. 3, 2, 1은 거쳐가는 정거장들이며 격발하는 것은 4차원이고 끝나는 것은 0차원이다.
물리학자들이 26차원까지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여러 개의 사건을 중첩시킨 것이다. 자연은 다섯이 한 지점에 맞물리는 4차원에서 밸런스가 격발된다. 4차원은 자연의 실제이고 3, 2, 1, 0차원은 인간의 관념이다. 사건이 복잡하므로 일부만 발췌해서 보자는 약속이다. 가만이 있는 돌멩이도 외력에 저항하고, 중력과 싸우고, 무게중심을 유지하므로 내부에 코어가 있어서 4차원이다. 차원이 하나라도 부족하면 존재가 무너진다. 왜냐하면 3, 2, 1, 0차원은 자연의 붕괴과정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체의 표면에서 면을 찾고 선을 발견하지만 그것은 붕괴의 흔적이다.
수학의 차원은 0차원에서 1, 2, 3, 4차원으로 커지는 방향이다. 구조론의 차원은 4차원 계로 시작하여 체, 각, 선, 점으로 작아지는 방향이다.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가 있다. 자연에서 가장 작은 형태는 사면체다. 사면체는 네 개의 꼭지점을 가진다. 이때 네 꼭지점은 서로를 공유한다. 여기서 하나만 빼도 형태가 무너져서 존재가 부정된다. 그러나 이는 인간와 관찰이고 자연에 사면체는 존재할 수 없다. 압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사면을 연결하여 묶어줄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보통은 전자기력으로 묶여 있다. 넷을 묶어주는 코어까지 다섯이 하나의 존재를 이룬다. 그 상태는 에너지의 확산이 수렴으로 바뀌는 모순이며 밸런스가 무너져서 깨질 때 차원을 하나씩 빼서 중첩을 빼면 3차원 체, 코어를 빼면 2차원 각, 대칭의 맞물림을 빼면 1차원 선, 접점을 빼면 0차원 점이다. 중첩이 없으면 의사결정이 불가능하고, 꼭지점인 코어가 없으면 맞물리지 않아 크기를 가질 수 없고, 두 방향의 대칭이 없으면 구조로 엮일 수 없고, 접점이 없으면 관측자가 그것을 가리킬 수도 없다.
계 체 각 선 점
구조론 차원은 형태가 아니라 에너지를 본다. 자연의 실제는 에너지고 형태는 인간의 해석이다. 인간의 눈이 평면이므로 3차원과 4차원은 볼 수 없다. 홀로그램으로 3차원을 볼 수 있지만 억지다. 우리가 3차원을 보는 것은 뇌가 2D를 3D로 해석한 것이다. 그러므로 해석을 잘 하면 4차원도 볼 수 있다. 천칭의 축에 두 접시의 에너지가 맞물린다. 잘 하면 중력을 볼 수 있다. 지렛대의 길이를 참고하여 받침점에 가해지는 힘의 크기를 볼 수 있다. 활시위의 당겨진 정도를 보고 화살에 가해지는 힘의 크기를 볼 수 있다. 무게중심, 힘의 중심을 볼 수 있다. 질량을 볼 수 있다. 질량은 상태를 변경하는데 드는 힘이다. 자동차의 속도를 보고 그 자동차을 멈춰세우는데 드는 힘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다.
4차원은 유체의 압으로 존대한다. 우리는 기압이나 수압을 볼 수 없다. 집단에 걸린 스트레스의 강도를 볼 수 없다. 그런데 볼 수 있다. 고무공이 벽에 맞고 튀어나오는 장면을 고속카메라로 촬영하면 고무공이 짜부라지는 정도를 보고 내부에 걸린 압력을 볼 수 있다. 헤머던지기를 하는 선수가 헤머를 돌리는 모습을 보고 헤머에 걸린 힘의 크기를 알 수 있다.
자연의 모든 존재는 4차원이다. 4차원은 3차원 입체에 에너지 공급자를 더한 것이다. 아기는 탯줄을 끊고 엄마로부터 독립하지만 우주 안에 완전한 독립은 없으며 반드시 에너지를 외부에 의존한다. 궁극적으로는 태양이 인간의 에너지원이다. 태양이 식물을 키우고 식물이 동물을 키우고 인간이 그것을 먹는다. 독립은 의사결정의 독립일 뿐이며 완전한 독립이 아니다. 사건은 중첩된다. 사건 속에 또다른 사건이 있다. 사건 속에서 또다른 사건의 독립이지 완전한 독립은 아니다.
계는 에너지의 중첩이며 계에서 중첩을 빼면 남는 것이 체다. 사과를 따면서 꼭지를 뗀 것이다. 외부의 에너지 공급자로부터 입자가 독립한다. 계의 의미는 의사결정이 외부->내부로 방향전환을 하는 것이다. 닫힌계 안에서 에너지는 확산에서 수렴으로 바뀐다. 계는 내부에 코어가 성립하므로 무게중심, 질량중심이 반드시 있다. 중첩이 소멸하여 코어가 외부로 노출되면 체다. 무게중심이 되는 물체의 내부 꼭지점이 코어다. 체에서 계로 바뀌면 중첩이 사라지므로 내부가 텅 비었다고 간주된다. 체는 코어가 밖으로 노출된다. 자궁속의 아기라면 배꼽이 코어다. 자궁 속에서는 엄마와 아기가 중첩상태의 계를 이룬다. 아기가 탄생하면 배꼽이 외부로 노출된다. 사면체에서 외부에 노출된 꼭지점이 코어다. 사면체의 코어는 나머지 세 점을 공유한다.
수학의 3차원은 부피를 의미하지만 구조론의 체는 부피를 만드는 그릇이다. 하나의 센터에서 세 방향으로 간격을 벌려야 부피를 담을 수 있다. 천칭에 매다는 접시는 줄이 셋이라야 한다. 손가락은 최소 셋이라야 사과를 딸 수 있다. 손바닥까지 넷이 3차원을 이룬다. 손바닥에 손가락 셋이면 천칭의 접시와 같다.
계에서 체로 바뀌는게 의사결정이다. 그것은 코어를 밖으로 꺼내는 것이다. 사과를 둘로 쪼갠다면 밖으로 씨방이 밖으로 노출된다. 지렛대의 받침점이 코어다. 각은 받침점을 제거한 것이다. 궁수가 활을 당기면 계, 화살을 놓아버린게 체, 화살이 떠나버린게 각이다. 이제 활과 시위의 대칭만 남는다. 활시위가 활에서 풀린게 선이다. 활시위가 끊어진 지점이 점이다.
구조론에서 면이라고 하지 않고 각이라고 하는 이유는 꼭지점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꼭지점은 둘이 겹치는 부분이다. 겹치는 부분을 이동하여 의사결정한다. 각은 겹치는 부분을 이동시킬 수 없다. 계는 중첩에 의해 압이 걸려서 밀도가 있고, 체는 꼭지점이 되는 외부로 드러나 있고, 각의 꼭지점을 자르면 선이 되는데 선은 꼭지점이 없다.
계 - 꼭지점을 이동시킬 수 있다.
체 - 꼭지점을 틀 수 있다.
각 - 꼭지점을 없앨 수 있다.
선 - 꼭지점이 없다.
점 - 대칭이 없다.
꼭지점을 관측자라 할 수 있다. 우주공간에 아무 것도 없고 어떤 둘만 있다면 A가 B로 가든 B가 A로 가든 같다. 꼭지점이 없으면 방향이 불성립이다. 크기가 불성립이다. 거리가 불성립이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든 관측자가 없으므로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때 둘이 공유하는 제 3자가 있어야 방향이 있고 질서가 있고 크기가 있고 거리가 있다. 그 공유하는 지점이 꼭지점이다. 꼭지점이 관측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선은 관측자가 없으므로 게임으로 말하면 심판이 없어서 져놓고 이겼다고 우겨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보통 말하는 상대성이다. 점은 선이 끊어지는 지점이다. 점은 선에 빌붙어 있을 뿐 독립적으로는 존재가 없다. 보통 우리가 종이에 점을 찍어놓고 거기에 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점을 보는 관측자인 인간과의 연결선이 있다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는 것이다.
저울 됫박 콤파스 자 수
차원이 다섯인데 숫자로 4차원, 3차원, 2차원, 1차원, 0차원이라고 하면 헷갈린다. 계차원, 체차원, 각차원, 선차원, 점차원이라고 해야 헷갈림을 방지할 수 있다. 도량형은 '저울, 됫박, 컴퍼스, 자, 수'가 있다. 수는 한 개, 두 개 하고 숫자를 세는 낱 개다. 곧 점이다. 수가 모이면 자가 되고, 자가 모이면 컴퍼스가 되고, 컴퍼스가 모이면 됫박이 되고, 됫박이 모이면 저울이 된다. 그릇처럼 내용물을 담을 수 있는 용기가 됫박이다. 되斗가 맞지만 그릇을 말하는지 거기에 담기는 양을 말하는지 헷갈리므로 됫박이라고 쓰자. 됫박 두 개를 연결한 것이 천칭저울이다. 대저울도 원리는 천칭과 같다. 아인슈타인이 시간을 4차원이라고 한 것은 됫박을 움직이는 거리의 곱이 저울의 무게와 같다는 말이다. 대저울의 추가 이동한 거리만큼 시간이 걸리므로 상대성이론의 등가원리에 따라 시간의 곱 만큼 무게를 갈음한다.
자연의 어떤 존재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반드시 외부와 연결되어야 하며 그 연결된 정도가 질량이다. 질량이 크다는 말은 연결강도가 크다는 말이다. 빛은 연결이 끊어져 질량이 없지만 움직이는 시간의 곱이 질량과 같다. 등가원리에 따라 빛을 멈추게 하는데 드는 비용이 질량과 같다. 빛은 공간을 직선으로 진행한다. 축에 잡혀서 계 내부에서 광속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질량이다. 질량은 빛이 축에 잡혀 멈추어진 정도를 나타낸다. 반대로 광속은 빛의 탈출속도다. 광속은 질량이 있는 물질 내부의 의사결정 속도와 같다. 활은 화살을 쏘고, 전자는 빛을 쏜다. 천칭은 됫박을 쏘고, 됫박은 컴퍼스를 쏘고, 컴퍼스는 자를 쏘고, 자는 수를 쏜다. 눈금을 쏘는 것이다. 물질의 형태는 쏘아진 화살이 되돌아가서 나란한 것이다. 이쪽에서 쏘는 만큼 저쪽에서도 쏘아서 균형이면 그게 물질의 상호작용이다.
우주 안의 모든 존재는 저울이다. 저울 아닌 것은 없다. 저울이라야 외력의 작용에 반응할 수 있다. 저울은 축에 잡혀 지구와 연결된다. 반드시 외부와 연결이 있어야 한다. 연결은 겹침이다. 사과꼭지가 사과에 속하면서 동시에 나무에 속하듯이 겹친다. 쇠사슬은 연결부위가 겹쳐져 중첩된다. 우리는 어떤 물체 A와 B가 겹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전자기력 때문이다. 전자기력을 제외하면 그릇에 무한히 담을 수 있다. 됫박은 쌀을 담을 수 있다. 스펀지도 물을 담는다. 전자기력을 제외하면 속이 빈 그릇이 아니라 꽉찬 돌멩이라도 블랙홀처럼 무한히 담는다. 대표적인 예가 지렛대의 받침점이다. 지렛대의 길이에 비례하여 에너지를 감당한다. 무한히 긴 지렛대에 눌려 받침점이 찌그러진게 블랙홀이다.
입체는 크기가 있고 평면은 너비가 있을 뿐 크기가 없지만 실제로는 입체도 크기가 없다. 원리적으로는 무한이 중첩될 수 있다. 중첩된 정도가 질량이며 그 중첩을 반영하는게 저울이다. 중첩이 없이는 존재가 없지만 중첩이 없다고 치면 입체, 입체의 코어를 무시하면 면, 면의 대칭을 부정하면 선, 선의 연결을 부정하면 끊기는 지점이 점이다. 천칭저울을 계속 때려부수는 것이다. 천칭의 두 접시를 분리하면 입체, 접시를 매다는 고리를 잘라버리면 바닥의 납작한 부분이 면, 면을 가위로 자르면 선, 선을 자르면 절단부가 점이다. 이는 생각하기 좋도록 성질을 발췌한 인간의 관념이고 자연은 중첩되어 4차원 계로 존재한다.
소재 기능 성능 효능 외양
산업의 혁신은 소재, 기능, 성능, 효능, 외양으 로 다섯 차례 일어난다. 이는 주변과 동시에 맞물리는 정도를 나타낸다. 가장 차원이 높은 소재가 주변과 더 많이 맞물리며 소재가 바뀌면 이에 연동시켜 모두 바꾸어야 한다. 반대로 외양의 디자인이 바뀌었다고 내용을 바꿀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산업의 경쟁은 소재경쟁, 기능경쟁, 성능경쟁, 효능경쟁, 외양의 디자인 경쟁 순으로 일어난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소재가 바뀌면 기능이 바뀌므로 다 바꿔야 한다. 목재에서 플라스틱으로 소재가 변하면 이에 연동되어 기능의 혁신이 일어난다. 소재가 기능을 불러내는 것이다. 소재는 발견되고 기능은 발명된다. 소재가 기능에 앞선다. 마쓰시다가 플라스틱으로 가전제품을 만든 것은 소재의 혁명이다. 소재가 변하면 기능은 따라오므로 혁신이 우후죽순으로 일어난다. 사실이지 마쓰시다 혼자서 일본 열도를 먹여 살린 것이다. 기능경쟁이 일단락되면 성능경쟁이 일어나며 고성능 제품이 비싼 가격으로 시장에 군림한다. 시간이 흐르면 더 이상 좋은 성능이 필요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마트폰으로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고성능 카메라가 왜 필요하냐는 식이다. 가성비를 따지는 효능경쟁이 일어나서 중저가 제품이 활개를 친다. 더 이상 바꿀게 없으면 외양의 디자인이라도 바꿔보는 것이다.
이 순서의 의미는 라디오모자와 같은 괴랄한 제품의 실패이유를 아는데 있다. 라디오와 모자를 결합하면 야구장에서 쓸만하지만 이런 식의 틈새시장을 노리는 제품은 의외로 실패하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저가제품인 모자의 기능을 높이려다가 고가제품인 라디오의 성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라디오의 기능이 모자의 외양보다 더 윗선이다. 고급모자가 아니라 저급한 라디오가 된다. 지게와 바퀴를 결합하여 300킬로도 짊어질 수 는 바퀴지게를 발명하여 후진국에 보급하려고 한 사람이 있지만 이런 식의 어중간한 제품은 실패한다. 아프리카를 지원하려는 적정기술이 대체로 기대에 못 미치는 이유다. 아프리카에 가장 필요한 것은 권력이다. 권력이 더 고가품이다. 차라리 권력을 과시할 수 있도록 비싼 제품을 파는게 낫다. 적정기술은 권력이 없는 처지를 들키게 한다. 아프리카에 필요한 것은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은 외부와 연결하는 권력을 준다. 우리는 실용적인 것을 주려고 하지만 실용적인 것은 별로 쓸모가 없다. 아프리카 사람이 적정기술을 갖고 오는 외부인을 반기는 것은 손에 쥐어주는 제품의 이득이 아니라 외부인과 연결되는 인맥의 힘을 반기는 것이다. 인맥이 권력이기 때문이다.
소재는 원리가 발견되고, 기능은 메커니즘이 발명되고, 성능은 한계점에의 도달이 경쟁되고, 효능은 가성비의 효율성이 착취되고, 외양은 고객의 기호에 맞춰진다. 소재, 기능, 성능, 효능, 외양의 순서대로 개발하면 흥하고 순서가 어긋나면 망한다. 고가품이지만 성능이 우월하여 다른 사람이 주목하게 만드는 권력을 주거나 저가품이라서 가성비가 좋거나 둘 중 하나는 해야하는데 어중간하면 망한다.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
컴퓨터든 암산이든 주산이든 필산이든 원리는 같다. 손뼘으로 크기를 재더라도 같다. 입력, 저장, 제어, 연산, 출력은 구조론적 해석이며 컴퓨터 용어와는 다를 수 있으므로 적당한 우리말로 바꾸면 받기, 쌓기, 틀기, 풀기, 주기가 된다. 손뼘으로 잰다면 일단 가져와야 한다. 받기다. 다음 대상을 정렬해야 한다. 자리를 잡는 것이 쌓기다. 다음 손을 움직여서 접촉한다. 손뼘으로 재더라도 엄지가 먼저 닿는게 틀기, 다음 검지를 벌리는게 풀기다. 이렇게 얻어진 정보를 전달하는게 주기다.
컴퓨터라도 처음 입력은 서로 호환이 되어야 한다. 질은 결합하므로 결합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음 입자는 독립하므로 재료를 도마 위에 올려야 한다. 그것이 저장이다. 일을 할 수 있도록 센터에 정렬하는 것이다. 다음은 컴퓨터가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는 것이 제어다. 칼로 도마를 내리치는 것이다. 그 다음은 그것을 반복한다. 무를 채썰더라도 반복하여 칼질을 하는게 연산이다. 프로그램이 작동하여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연산이다. 작업을 멈추는 것이 출력이다. 입력은 정보를 외부에서 가져오고 저장은 정보가 CPU에서 자리잡고, 제어는 구체적인 명령을 내리고, 연산은 명령을 시간적으로 반복하여 실행하고, 출력은 그것을 모니터로 전달한다.
모든 일처리는 같다. 볼펜으로 글씨를 쓰더라도 일단 그것을 쥔다. 받기다. 다음 종이 위로 가져가서 적당한 위치에 센터를 맞춘다. 쌓기다. 다음은 힘을 가하는 것은 에너지의 방향을 트는 것이다. 다음 글씨쓰기를 반복적으로 진행한다. 뇌에 든 정보를 풀어내는 풀기다. 뇌 속의 정보가 종이에 주어지는 주기로 끝낸다. 모든 일은 외부에서 가져오고(질)(, 내부에서 정렬하고(입자), 명령을 전달하고(힘), 실무를 반복하고(운동), 끝나면 돌려준다(량). 질, 입자, 힘, 운동, 량이 헷갈릴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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