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관점
세상은 변화다. 변화를 해명하는 것은 구조론이고, 변화를 측정하는 것은 수학이고, 변화의 결과를 확인하는 것은 과학이다. 과학은 변하지 않는 것을 규명한다. 변화는 사건 내부에서 일어나는데 과학은 사물의 외부를 관찰한다. 생물의 진화든 정치의 진보든 변화다. 우연한 변화가 아니라 질서있는 변화다. 과학은 여태 변화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가지 추측이 난무할 뿐이다.
활을 쏘는 것은 구조론이고, 화살이 날아간 거리를 측정하는 것은 수학이고, 과녁에 꽂힌 화살을 찾는 것은 과학이다. 과학이 관심을 보였을 때는 변화가 끝난 시점이다. 구조론이 먼저다. 사건이 먼저 일어나고 인간들은 뒤늦게 사건을 인지한다. 사건은 원인에서 결과로 진행하고, 인간이 사건을 인지한 시점은 결과가 확정된 후다. 추론은 이를 되짚는 것이다. 결과에 서서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간다. 자연의 전개와 인간의 추론은 방향이 다르다. 혼선이 빚어진다.
학문에는 인과관계에 따른 서열이 있다. 구조론이 모든 학문의 어머니다. 구조론 > 수학 > 물리학 > 화학 > 생물학 > 심리학 > 사회학 순으로 전개한다. 사회가 그런 것은 인간의 심리가 그래서다. 심리가 그런 것은 생물의 진화가 그래서다. 생물이 그런 것은 화학이 그래서, 화학이 그런 것은 물리가 그래서, 물리가 그런 것은 수학이 그래서, 수학이 그런 것은 구조론이 그래서다.
수학의 출발점은 집합론이고 집합이 만들어지는 것은 의사결정구조다. 집합은 모인다. 그런데 왜 모일까? 사실은 복제된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바퀴자국의 집합이 탄생한다. 집합은 왜 생겼지? 자국들이 모인게 아니고 차가 지나간 것이다. 자국은 타이어의 트레드를 복제한다. 세상은 물질의 집합이 아니라 원본의 복제다. 모든 복제의 원본은 구조다. 정치든, 경제든, 사회든, 문화든, 생물이든, 우주든 하나의 보편구조를 복제한다.
자궁을 통과하지 않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모든 존재는 거쳐가는 자궁이 있다. 그것을 그것이게 하는 그것이 있다. 탄생의 절차가 있다.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구조에서 의사결정이 일어난다. 거기서 모두 만난다. 존재는 그 다음이다.
우리는 변화를 불길하게 여기지만 변화는 존재의 원래 모습이다. 원래 안정된 것이 어떤 불행을 맞아 변화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존재는 내부에 변화를 감추고 있다. 각운동량을 숨기고 있다. 물질은 겉으로 안정되어 있지만 소립자 단위로 쪼개보면 내부에 활발한 변화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변할까? 원래 변화를 품고 있다. 그게 에너지다. 균형을 추구하는 불균형이 에너지다. 불균형은 다른 균형으로 옮겨간다. 우리는 잽싸게 빨대를 꽂고 에너지를 빼먹을 수 있다.
우리가 눈으로 목격하는 것은 안정된 물질이다. 안정된 물질은 변화가 나란한 것이다. 어떤 균형에 도달해서 겉으로는 변화가 멈추어 있다. 변화가 없어진게 아니고 겉보기의 나란함에 의해 변화가 내부로 숨겨진 것이다. 나란함을 깨뜨려서 변화를 드러내면 에너지다. 에너지를 상자에 가둔 다음 한 곳에 구멍을 뚫어 에너지가 균형을 찾아 한 방향으로 이동하게 만들면 동력을 얻을 수 있지만 상자에 가두는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결국 도로아미타불 되는게 엔트로피다. 무한동력은 그래서 실패한다.
에너지는 원래 나란하지 않으나 외부에서 흔들면 나란해지려고 한다. 원심분리기를 돌리면 정렬한다. 외부의 흔드는 힘에 의해 나란해지려는 상태를 위치에너지라고 하고 그 위치에너지를 전달하는 것을 운동에너지라고 한다. 고대에 햇볕에 의해 가두어져 나란해진 것을 흔들어서 빼먹는 것은 화석에너지다.
에너지는 고유한 각운동량에 의해 확산방향으로 흩어지려고 하고, 흩어지면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많은 공간을 차지하면 비효율적이고, 비효율적이면 지고, 지면 깨지고, 깨지면 다른 것에 흡수된다. 살아남은 것은 이기는 것이고, 이기는 것은 효율적이고, 효율적인 것은, 공간을 적게 차지하는 것이고, 공간을 적게 차지하는 것은 밸런스고, 밸런스를 만드는 방법 중의 하나는 회전이다. 그래서 은하는 회전하고, 지구는 공전하고, 별들은 자전한다. 소용돌이든 회오리 바람이든 마찬가지다. 생물의 진화든 문명의 진보든 밸런스를 만드는 방법이다. 생물은 진화하면 이기고 이기면 살아남는다. 문명은 진보하면 이기고 이기면 살아남는다. 생물은 환경과의 밸런스를 추구하여 이기고, 인간은 사람과의 의리를 추구하여 이긴다. 자연의 생물이든 인간의 문명이든 밸런스를 추구하는 것이다. 의리는 집단의 의사결정이 가능한 상태를 추구한다.
존재는 변화이며, 변화는 에너지고, 에너지는 불균형이며, 불균형은 균형을 찾아 확산된다. 외력이 작용하면 확산보다 수렴이 더 쉽게 균형을 찾아낸다. 평소에는 흩어져서 균형을 이루지만 외력이 작용하면 소용돌이나 회오리바람과 같이 모여서 균형을 찾는다. 확산이 수렴으로 바뀌는 것이다. 수렴이 한번 시작되면 계속 간다. 질에서 입자로 힘으로 운동으로 량으로 간다. 어떤 수단으로 에너지를 외력이 작용할 수 있는 좁은 장소에 가두면 동력이 된다. 가두는 비용이 더 들기 때문에 억지로 가두면 손해라는게 엔트로피다. 중력에 의해 가둬진 에너지가 초신성 폭발로 흩어지는 중에 우연히 충돌하여 공유결합으로 가둬진게 우리가 아는 수소보다 무거운 물질이다. 겉보기로 가두어져 있을 뿐 여전히 변화는 내부에 잠복해 있다. 우주의 근본은 변화가능성이다.
Last updated
Was this helpf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