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원자 구조자
수는 숫자로 이루어지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진다면, 변화는 구조자로 이루어져야 한다. 의사결정의 1 단위가 구조다. 구조 다섯이 모여 사건 하나를 이룬다.
서구의 원자론은 변하지 않는 것을 찾으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변화를 추적하려면 변하지 않는 잣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동양의 주역사상, 음양오행, 연기사상은 변화 중심의 사유다. 노자의 이유극강이 그러하다. 유가 강을 이기고 변화가 불변을 이긴다. 변화를 뜻하는 음은 불길하고 안정을 뜻하는 양이 길하다는 주역의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주역의 역은 원래 변화를 뜻한다는 점에서 모순이 있다.
문제는 관측의 역설이다. 서양은 변화의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주변을 탐색했으나 오히려 성과가 있었고, 동양은 정곡을 찔렀으나 도리어 혼미해졌다. 이는 직관의 한계다. 변화가 본질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직관으로 안다. 딱 봐도 정답은 변화다. 그러나 변화를 보면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흐름 속에서는 흐름을 읽을 수 없다. 불변을 봐야 변화가 보인다.
한의학의 기는 변화를 추적하려는 것이다. 실패한다. 변화의 뒤꽁무니를 쫓아서는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다. 변화의 앞길을 막아서야 한다. 변하지 않는 질량을 봐야 뉴턴이라도 힘의 법칙을 찾아낼 수 있다. 변하지 않는 바퀴축을 기준으로 변하는 바퀴의 속도를 판단할 수 있다. 21세기다. 불변을 추구하던 서구과학은 양자역학의 변화에 막혔다. 닐스 보어는 동양의 주역에서 힌트를 얻어 상보성 원리를 정립했다. 정답은 역시 변화다.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먼저 불변을 보고 다음 변화를 봐야 한다. 불변의 씨앗을 보고 다음 성장과정에서의 변화를 봐야 한다. 도장은 불변이나 도장을 찍어보면 종이와 잉크의 상태에 따라 변한다. 일란성 쌍둥이 유전자는 같은데 성장환경에 따라 변한다.
동양의 한의학은 변화하는 기를 찾으려다가 길을 잃었고, 서구의 원자론은 불변의 요소를 찾으려다가 길을 잃었다. 우주의 근본은 변화다. 변화 안에서 불변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나란함이다. 동양의 기는 변화해서 망하고 서구의 원자는 변하지 않아서 망하는데 구조론의 정답은 변화 속의 불변이다. 그것은 나란함이요 대칭이요 밸런스다. 변화의 대칭에서 변하지 않는 바퀴축이 되는 토대의 공유다. 그것이 구조다.
사물은 변하지 않고 사건은 변한다. 실제로는 그 반대다. 사건은 변하지 않는다. 사건의 진행은 변하지만 사건의 질서는 변하지 않는다. 사물은 변한다. 쇠가 녹쓸고, 소금이 물에 녹고, 생물이 죽고, 음식이 변질된다. 자동차가 달린다. 자동차는 변하지 않는다. 내부에서 변하는 것은 바퀴다. 외부에서 변한 것은 자동차와 주변의 관계다. 사건은 법칙을 따르며 사건은 변하나 법칙은 불변이다. 얕은 관찰에서는 사물이 불변하고 사건이 변하지만 깊이 파헤치면 사물이 변하고 사건이 불변이다.
우주 안에서 모든 것은 변한다. 겉보기가 변하지 않을 뿐이다. 씨앗에서 싹이 나오고, 싹에서 가지가 나오고, 가지에서 꽃이 나오고, 꽃에서 열매가 나오는 것은 변화다. 그 변화의 순서는 불변이다. 열매를 먼저 맺고 나중에 꽃이 피는 일은 절대로 없다.
쪼개지지 않는 불변의 원자는 없다. 두 변화의 나란함이 원자로 행세한다. 그것이 양자다. 쪼개면 쪼개지지만 사건을 추적하려면 쪼개지 말아야 한다. 원자의 쪼개지지 않는 성질은 추적하기 쉽도록 변하지 않고 제 자리에 가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인간의 희망사항인 것이다. 그런데 변한다. 과학계가 원자에 기대했던 제 자리에 가만이 있는 성질은 구조에 있다. 구조의 방향과 순서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원자는 하나고 구조는 둘이다. 변화하는 둘이 대칭을 이루고 나란한 것이 구조다. 나란하면 하나처럼 보인다. 둘이 하나로 행세하면 효율적이다. 그 효율성의 힘으로 외력에 맞서 자기 존재를 달성한다.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외력에 맞서 자기 위치를 지켰다는 말이다. 어떻게 이겼을까? 강하기 때문이다. 왜 강하지? 외력은 하나인데 구조는 둘이기 때문이다. 2는 1을 이긴다. 대표적인 것이 전자의 공유결합이다. 공유하면 효율적이고 효율적이면 안정적이다. 외력을 이기고 자리를 지켜서 존재를 달성한다. 자연계의 4대 힘 곧 중력, 강력, 약력, 전자기력이 모두 수학적으로 도출되는 구조적 효율성의 힘이다. 자연계의 4대 힘은 그렇게 했을 때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라는 말이다.
변화의 문제는 브레이크가 없다는 것이다. 한 번 시작되면 멈출 수 없다. 불이 번지듯이, 화약이 폭발하듯이, 돌풍이 몰아치듯이 겉잡을 수 없게 변화가 일어난다. 쓰러지는 도미노를 멈출 수 없다. 변화를 유지하면서도 멈추려면 닫힌계를 닫아걸고 변화가 내부를 향하게 해야 한다. 변화에는 비용이 소비되므로 내부를 쥐어짜기 어렵다. 구조가 변화과정에 효율성을 소비한 상태에서 또다시 효율성을 쥐어짜는 방법은? 둘이 나란한 상태에서 또다른 나란함을 만들어내려면? 내부를 쪼개서 또다른 나란함을 도출해야 한다. 이 과정은 질, 입자, 힘, 운동, 량에 걸쳐 5회 반복된다.
계가 만들어지면 질에서 입자로 가며 밸런스를 얻어 안정되지만 관성력은 또다른 불균형을 야기한다. 또다른 밸런스를 찾아 축이 이동한다. 질 밸런스에서, 입자 밸런스, 힘 밸런스, 운동 밸런스를 거쳐 량 밸런스에서 멈춘다. 밸런스를 만들면서 효율성을 소비했으므로 다음 밸런스에서는 선택지가 줄어든다. 여기에 사건의 방향성이 있다. 문어가 제 살을 깎아먹듯이 내부자원을 갉아먹는 형태로 밸런스를 도출하므로 구조손실이라는 마이너스가 일어난 것이 엔트로피 증가다. 닫힌계 안에서 의사결정 참여정도가 단계적으로 감소한다. 회의를 할때마다 참여자가 줄어든다. 회원의 일부가 진행요원으로 차출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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