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름과 응답
존재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바둑이라면 바둑알과 대국이 있다. 바둑알은 보인다. 대국은 보이지 않는다. 컴퓨터라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있다. 하드웨어는 보인다. 소프트웨어는 보이지 않는다. 생물이라면 세포와 생명이 있다. 세포는 보인다. 생명은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사물과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물은 보이고 사건은 보이지 않는다. 구조론은 보이지 않는 사건을 해석하는 도구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물질과 시공간이 알려져 있다. 시공간은 그 정체를 알 수 없고 보통은 물질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물질은 바둑알처럼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질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물질은 원자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집합이 뭐지? 그건 수학자에게나 물어보셔. 이러면 피곤하다. 바둑의 대국은 잘 모르겠고 눈에 보이는 바둑알만 논하자고 하면 피곤하다. 원자든 소립자든 바둑알에 불과하다. 바둑알은 하드웨어이고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인간은 핵심을 빠뜨리고 말하기 좋은 것만 말하는 경향이 있다. 물질은 쪼개보면 된다. 물질은 말하기 좋은 것이다. 말하기 힘든 것은 집합이다. 집합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고 물질에 대해서만 주목한다. 물질은 쪼개보면 되는데 원자는 쪼갤 수 없다. 좋은 변명거리가 생겼다. 소립자를 쪼개서 더 작은 것을 찾을때까지 결론을 유보한다. 교묘한 속임수다. 원자나 소립자는 바둑알이고 대국을 봐야 한다. 원자가 아니라 집합을 봐야 한다.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봐야 한다.
수학은 숫자와 셈으로 이루어진다. 수학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산학이다. 수가 하드웨어라면 셈은 소프트웨어다. 1, 2, 3, 4와 같은 숫자는 눈에 잘 띄게 표시한 것이다. 그게 바둑알과 같다. 고수는 바둑알 없이도 바둑을 둔다. 진짜는 대국이고 바둑알은 대국하는 중에 헷갈리지 않게 표시한 것이다. 숫자는 표시고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셈이 수학의 본질이다. 물질 역시 그러하다.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원자 알갱이라는 빠져나가기 좋은 핑계거리고 집합이 본질이다. 항상 본질이 있다. 생물은 생명이 본질이고, 컴퓨터는 소프트웨어가 본질이고, 수학은 셈이 본질이고, 바둑은 대국이 본질이고, 세상은 사건이 본질이다.
모든 것의 출발점 찾기다. 우리는 존재의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 하나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해야 한다. 백지 상태에서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드웨어는 보이지만 소프트웨어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으므로 깨달아야 한다. 세상은 사물의 집합이 아니라 사건의 복제이고, 우주는 물질의 집합이 아니라 구조의 연결이다.
애초에 보는 방법이 잘못되었다. 사물이 아니라 사건으로 보는 관점을 얻어야 한다. 사물은 일방작용이고 사건은 상호작용이다. 일방작용의 관점으로 보면 항상 둘로 나누어진다. 대칭으로 쪼개져서 수습이 안 된다. 이원론에 다원론으로 흘러가서 산만해진다. 우리는 세상이 일원론이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안다. 바둑은 검고 흰 두 가지 색깔의 바둑알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두 대국자 사이에 오가는 하나의 랠리로 이루어진다. 생물은 DNA 자기복제 하나로 이루어진다. 세상은 물질이 집합된 것이 아니라 사건이 복제된 것이다. 집합의 원소를 찾을 것이 아니라 복제의 원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의사결정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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