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세계
존재는 사물 아니면 사건이다. 사물이 한 자리에 모이면 사건이 일어난다. 개와 원숭이가 만나면 싸움이 일어난다.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면 격투가 벌어진다. 틀렸다. 남녀가 한 방에 머무르면 무슨 일이 생긴다. 존재가 모여서 사건을 일으킨다. 아니다. 실제로는 우주 안에 사건이 존재할 뿐이다. 사물은 존재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끼리의 약속이다. 인간의 언어적 편의다.
공기 입자는 사물이다. 바람이 부는 것은 사건이다. 그런데 공기 입자도 소립자 단위로 쪼개면 결국 사건이다. 존재는 혼자 성립할 수 없고 반드시 짝을 지어야 한다. 어떤 둘이 토대를 공유하고 나란히 움직이면 사물처럼 보인다. 팽이가 돌고 있는 것은 사건이다. 그런데 외부의 관측자에게는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물은 고정되어 있고 사건은 움직인다. 우주 안의 모든 존재는 결국 움직이는 사건이며 그 중에서 나란히 가므로 해석을 생략해도 되는 것이 사물이다. 움직이는 사건은 자연의 실재 모습이고 고정된 사물은 말하자면 단축키 같은 것이다.
바둑이라면 바둑알과 대국이 있다. 바둑알은 보인다. 대국은 보이지 않는다. 대국은 바둑알의 자리바꿈을 보고 해석한다. 컴퓨터라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다. 하드웨어는 보인다. 소프트웨어는 보이지 않는다. 생물이라면 세포와 생명이다. 세포는 보인다. 생명은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사물과 사건으로 이루어진다. 사물은 그냥 보이고 사건은 해석하여 퍼즐을 맞춰야 보인다.
바람 - 분다 물 - 흐른다 나무 - 자란다 과일 - 익는다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고, 나무가 자라고, 과일이 익어가는 것은 인간이 해석하여 퍼즐을 맞춘 것이다. 명사와 동사를 연결하여 짝을 짓는 것이 해석이다. 풋사과와 익은 사과는 다른 사과인데 둘을 연결하여 같은 사과로 치는 것은 인간의 해석이다. 구조론은 사건을 해석하는 도구다. 퍼즐을 쉽게 맞춘다.
일찌기 사건에 주목한 사람은 없었다. 인류의 문명사 1만년 동안 인류는 변화하는 사건이 아니라 고정된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잘못을 저질러 왔다. 구대륙에서 신대륙으로 건너가듯이 인류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건너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사물의 세계에서 사건의 세계로 갈아타야 한다.
공간과 시간은 자연에 없다. 그런 존재가 없다. 그것은 물질의 변화를 해석하는데 쓰이는 말에 불과하다. 그런데 있는 걸로 친다. 이는 사건을 사물화 한 것이다. 그게 더 쉽기 때문이다. 사건의 해석이 귀찮아서 꼼수를 쓴 것이다. 편의로 왜곡한 것이다. 그런데 도구를 쓰면 어떨까? 도구가 대신 해석해주면 어떨까? 인간은 핸들만 쥐고 있으면 된다. 어질러진 퍼즐 조각은 구조론이 맞추어준다. 그렇다면 꼼수를 버리고 정공법으로 승부할 수 있다. 사물의 관점을 버리고 사건의 해석으로 갈아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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